네가 정말 믿는다면(힘든 상황에 있는 분이라면..)

이 설교는 지금까지 했던 수많은 설교중
어쩌면 평생 제 기억에 남을 설교입니다.

2020년 1월, 아내를 한국병원에 입원시킨후
생사의 기로에 있는 아내를 홀로 병원에 남겨둔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캐나다로 옮긴후

무슨 말씀을 전하실까
안타까운 눈빛으로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강대상에서 처음 선포한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라기보다는 제 믿음의 신앙고백같았기에
개인적으론 오래 기억될 설교입니다.

부족하나마
모쪼록 저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속에 직면해 있을지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올려드립니다.

마침 신문사에서 설교기고를 부탁해서
보내드렸는데, 우연히 찾게 되었습니다.

[설교단상] 네가 정말 믿는다면? (요11:40-44절)_박준호 목사(토론토 꿈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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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말 믿는다면? (요11:40-44절)

박준호 목사(토론토 꿈의교회)

오늘 이야기의 포인트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는 사실이 아니다. 나사로 입장에서는 천국에 있다가 고통스런 세상으로 다시 왔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다가 결국 다시 죽었을 뿐이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믿음이다. 나사로를 통해 사랑하는 마리아,마르다와 유대인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기적의 목적은 다 믿음을 심고 믿음을 증진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몇 구절을 확인해보자 새번역성경이다. 11장25절 마르다에게 네가 이것을 믿느냐? 며 믿음이 있는지를 확인하신다.

<이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밝혀 말씀하셨다. “나사로는 죽었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이 너희를 위해서 도리어 잘 된 일이므로, 기쁘게 생각한다.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믿게 될 것이다. 그에게로 가자.”(요11:14-15, 새번역)>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요11:42, 새번역)>

<마리아에게 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대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요11:45 ,새번역)>

결론적으로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받으셨고 많은 사람이 믿음을 가져 구원을 받게 되었다

특별히 오늘 40절 우리모두가 좋아하는 구절인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를 중심으로 과연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믿음의 실체를 나누기를 원한다.

1.하나님의 시간을 믿으라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을 더 머물렀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가장 아쉬워한 것은 “예수님 조금만 더 빨리 오시지 왜 이렇게 늦게 오셨냐는 것이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똑같이 말했다. 21절과 32절이다.

예수님이 좀 일찍 오셨다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원망이다. 5절에 예수님이 나사로와 두 자매를 사랑하셨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6절은 뭔가 맞지 않다.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었기 때문에 빨리 가지 않고 이틀이나 지체하셨다는 말이다. 상식적으론 말이 안 맞다. 사랑하면 즉시 달려가는 법이다. 아마 마르다, 마리아는 섭섭했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환자에게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예수님은 결국 나사로가 죽은지 4일후에 찾아가신다. 시체가 냄새가 날 지경이다.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시점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하나님이 정한 시간이었다. 예수님은 일부러 그 시간에 방문하신 것이다.

37절에 사람들이 원망하도록 허락하신다.

<그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하실 수 없었단 말이오?”>

그러나 하나님은 카이로스의 시간 즉 하나님의 시간표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비록 그 시간을 기다리는데 아픔이 있고, 고난이 있고, 오늘 나사로같이 실제 죽음의 순간이 있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의 시간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시간이 가장 Good-Timing임을 믿어야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가 참담한 마음으로 슬퍼하게 하셨다. 낙심하고 절망하게 하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시간표였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의 시간표가 찼을때 예수님은 나사로를 일으켜 세우셨다.

그순간 사람들의 극한 슬픔은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과 경외가 되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큰 믿음을 불러 일으켰다.

네가 믿는다면? 은 네가 하나님의 시간표를 믿는다면? 이라는 의미이다.

2.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믿으라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전쟁 이야기이다. 수많은 전투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전투방법은 우리의 상식과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우리와는 다르다.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와 다른 것이다.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한다. 질병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하나님께 전쟁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이길 세력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질병도 아무것도 아니다. 못고칠 질병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죽음은 하나님앞에 힘도 쓰지 못한다. 하나님이 생명 그 자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감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가나안에 입성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광야에서 태어난 남자들 즉 전쟁을 치루어야할 남자들 모두 할례를 행하는 일이었다. 바로 적군이 사방에 널려있는 상황에서 요단강저편에서가 아니라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여다놓고….할례를 행하라는 것이다.

만약 이 정보가 가나안족속에게 들어갔다면 그들은 전멸할지도 모르는 두려운 일이다.

남성의 생식기 표피를 잘라낸다면 아물때까지 꼼짝도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고 한다. 거룩해지라는 말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해있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이다. 이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여호수아와 장정들의 믿음도 대단한 것이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명령을 토를 달지않고 받아들였다. 이것이 순종이다. 언제나 기적은 말씀과 순종의 합작품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치른 첫 번째 전쟁은 가나안에서도 가장 철옹성으로 알려진 여리고성 정복이다. 엄청난 전략이 필요하고, 군사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이었는가? 조용히 여리고성을 돌라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역시 이스라엘은 그 명령대로 따라했다. 어떻게 되었는가? 여리고성은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총알 한 발 날리지 않고 여지없이 무너졌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이렇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 일하시는 방법을 믿을수 있는가? 믿는다는 말은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합의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말이다.

그것은 그 이해되지 않는 명령에 내 목숨을 건다는 말이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네가 믿는다면?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이다.

3.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으라

지금 내게 일어나는 일을 다 이해할 수가 없다면 앞으로 일어날 결론을 믿어야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내게 좋으신 일을 행하실거야! 하나님이 나를 향해 가지신 계획은 선한계획이라는 사실을 믿으면…..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을 가지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여러분이 요셉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어릴때부터 아버지 사랑을 듬뿍받고 자랐다. 하나님사랑까지 듬뿍 받아서 특별한 꿈까지 연거푸 꾸게 되었다. 미래에 엄청난 비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하루아침에 형들에게 배신당하고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

처음엔 무슨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 이틀 1달 2달 1년 2년 10년동안 자신의 삶에 아무런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자신이 꾸었던 꿈은커녕 아예 상상하기도 어려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결국은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수 없는 깊은 감옥에 갇혀버리고 만다.

이쯤 되었을 때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여전히 믿을수 있을까?

우리 가운데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전히 좋으신 분이라고 고백할수 있겠는가? 그분이 여전히 내게 대하여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믿을수 있겠는가?

그렇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면 이 사실을 믿어야한다. 어떻게 이 사실을 믿을수 있는가? 가장 기본적이면서 분명한 사실 때문에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을수 있다. 사도신경의 첫 번째 신앙고백이다.

The Apostles’ Creed(NIV)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여기서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만큼이나 더 중요한 단어는 Father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다. 부모와 자식간에 신실한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다면, 우리는 부모님을 믿을수 있다.

그분은 가장 좋은 것을 내게 주실 분이라는 사실을 믿을수 있다. 그분은 결코 내가 잘못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을수 있다. 더구나 그분이 전지전능하다는 사실까지 믿는다면 더 이상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그분이 나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거나 해할수 있다는 말인가?

아버지는 절대 아들의 편이다. 환란이나 곤고나 그 어떤 세력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끊을수 없다.

네가 믿는다면?이라는 말은 – 네가 선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이다.

4.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부활과 생명의 주인임을 믿으라

오늘 본문 21절에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으러 나오는 장면이 나온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이런말을 한다. “예수님 당신이 여기 계셨다면 내 오빠는 죽지 않았을겁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지금이라도 예수님이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다 이루어주실줄 압니다”

어떤 사람은 마르다에게 확실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의 믿음을 가진 사람조차 얼마나 될까싶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이 대답하신다. “그래 그런 믿음이 있다니 다행이다. 네가 말한 것처럼 죽은 네 오빠 다시 살아날거야”

그러나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흔히 하는 위로정도로 받아들인 것 같다.

“예 세상 끝날 마지막 날 부활때에는 오빠가 살아날줄 압니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믿음이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우리모두가 잘 아는 위대한 말씀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무슨 말인가? 나는 죽은 자도 살릴수 있는 생명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먼 미래에 있는 마지막날 말고, 너의 머릿속에 이론적 체계로 자리잡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믿음말고, 지금 당장 죽은 네 오빠를 살린다는 것을 네가 믿느냐?”

그때 마르다는 기가막힌 그러나 애매한 대답을 했다.

27절이다.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고백인가?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말해서 엄청난 칭찬을 들은 신앙고백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상황속에서는 틀린 대답이었다. 아니 부족한 대답이었다. 믿음이 없는 대답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 대답을 원하셨던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르다의 형식적인 믿음의 실체가 39절에 등장한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앞에 서서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놓으라고 명령하셨다. 이때 마르다가 나서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11:39)>

풀어보면 이런 말이다. “예수님 무엇을 하실려고 하십니까? 지금 죽은지 4일이나 지나 시체가 벌써 썩고 있습니다.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냥 기도나 한 번 해 주시고 내려가시지요?

그것만으로 저희들에게 충분합니다. 위로가 됩니다. “

사실 이 정도가 대부분 예수 잘 믿는다고 하는 신앙인들의 믿음의 실체다. 이 정도도 대단한 믿음인 것이다. 적어도 예수님을 원망하거나 떠난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40절입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나사로는 세상적으로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완전 절망의 상태에 있는 사람을 대표한다.

미이라를 만들고 얼굴을 수건으로 감쌌다는 말은 완전한 시체임을 암시한다. 더 이상 살아날 확률이 없는 상태다.

돌을 옮겨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을 듣고도 마르다가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대답한 것은 그 마음속에 절망이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의 마음속에 오빠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에 대한 생각은 0%였다는 것이다.

“정작 자신과 관계된 절망가운데서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하고 자신의 이성과 믿음안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시켜 버린다.

무덤앞에 서서 오빠의 죽음이라는 너무도 큰 현실적인 상황이 말씀을 보이지 않게 만든 것이다. 무덤앞에선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쓰지 못한 것이다. 믿음이 발동되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여러분도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자. 예배와 말씀을 통해 위로나 마음에 평안정도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저 예수님이 우리의 절망과 아픔을 위로하시는 분 정도로만 생각한다.

현재의 고통과 고난과 절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으실 수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기억하자. 말랐던 아론의 지팡이에도 싹이 났다. 살구나무가 되어 꽃이 피어났다. 하나님의 말씀은 쪼그라들었던 우리 인생을 꽃피우는 생명력이 있다.

에스겔 골짜기에 바싹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 이스라엘의 군대가 된 것 같이 예수님은 살리는 영이시다. 예수님이 오시면 만사가 살아난다.

네가 믿는다면?이라는 말은- 네가 예수님의 부활과 생명의 능력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이다.

내 고통의 크기나 깊이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면 생명의 역사는 오늘도 나타날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하나님의 시선은 언제나 살아있는 믿음에서 멈춘다. 바로 거기서 일하기 시작한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그것이 온전하다면 산을 옮겨낼 것이다.이 시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되기를 간절히 축복하며 기도한다.